강아지가 예쁜 신발을 신고 종종 걸음으로 산보하러 나갑니다. 줄을 잡고 뒤따르는 주인은 헌 운동복에 지저분한 운동화를 신었습니다.
다시 봐도, 강아지의 신발이 너무 깜찍하고 예쁩니다. 단장한 머리에 리본을 달고 살아있는 인형 같이 아장아장 쪼르르, 강아지가 참 행복해 보입니다. ‘참 팔자 좋다’
무엇으로 사람의 마음을 빼앗을까요?
주인을 무조건 좋아하는 것 외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. 귀가하는 주인에게 달려와서 안기고, 혀로 핥고, 깡충깡충 주위를 돌며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 거실을 돌며 넘어지고, 이리저리 구르며 반깁니다. 때로는 귀찮을 때도 있습니다. 그러나 온몸을 다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예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.
생존학적인 측면으로 본다면 강아지가 사람보다 더 우수한 것 같습니다. 똥 강아지 신분에서 가족보다 더한 대접을 받고 있으니까 말입니다. 미용실 출입에 병원혜택, 숙식 제공, 하는 일 없이 가진 호사를 누리다 죽으면, 부모 돌아가실 때보다 더 슬퍼하며, 납골당 까지 ㅎㅎㅎ
‘나를 즐거워하고 기뻐하라’하셨는데 우리는 왜 하나님을 이렇게 좋아하지 못할까요? 못난 목사의 고민입니다.
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, 강아지에게서 배워야 갰습니다. 그리하면 아들, 딸 삼아 주신 하나님께서 가만히 보고 계시지만 않겠지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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